기숙사1에 살다 보면 각종 사태가 벌어집니다.
일단 한창 나이의 고등학생-여자 기숙사의 경우 대량의 여고생-이 서식하며, 각종 (여고에 대해 환상을 가졌다고 하는) 남고생들의 환상을 깨는 간단하고도 일상적인 사건사고가 벌어지기는 합니다.
또한 규율이 어느 정도 잡혔다고 하는 남자 기숙사와 달라서 굉장히 자유분방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사연들입니다.
1학년 1학기 끝나고 처음 기숙사 방 옮기게 될 때, 그 전날 대량으로 분식 시켜먹고 방바닥에 신문지 깔아두고 잤던 일이나, 2학년 때 3학년 선배들 퇴실한 후 빈 방에 모여 진실게임 했던 정도의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학생부라는 조직이 있음에도 각종 사건이 터지는 곳이 학교인데 사감 한 명이 300명의 여학생을 관리하면 더욱 다양한 '사건'이 터지고는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당연히 도난 사건입니다.
남자 기숙사는 많아봐야 60명 정도라서 한번 사건이 터지면 금방 들통나니까 거의 없다지만, 한 학년에 100명 가까이 있는 여자 기숙사는 제가 겪은 것으로도 두세 번이었고, 그것도 기숙사 전체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수준으로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1. 수학여행 직전

1학년 때 수학여행은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 일주일 전, 1학년 방 상당수가 털렸는데 도난 품목은 대부분 지갑. 그중에는 세 번에 걸쳐 20만원을 도둑맞은 아이도 있습니다. 저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후 쓰레기장에서 지갑과 학생증으로 발견했고요.
대부분 수학여행 직전이니까...하고 투덜거리지만 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직 기숙사 책상 서랍에 자물쇠 달아두는 버릇이 없었으니까요.


2. 3층으로 이사하다가

우리 학교 기숙사는 1층이 1학년, 2층이 3학년, 3층이 2학년입니다. 2층이 3학년의 방인 이유는 여자 기숙사 2층이 3학년 자습실과 바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옮기는 시기는 방학 직전이나 방학중입니다.
따라서 '3층으로 이사한다'는 말은 '곧 2학년이 된다'는 뜻입니다2. 모처럼 4인실을 3명이 쓰게 되어 여유로움을 느끼며 짐을 옮기고, 대부분 짐을 옮기고 정리한 후에 몇몇 아이들은 샤워하러 갔고 저는 피곤해서 잤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룸메이트가 깨워서 말하기를,

"내 거 도둑맞았어!"

...그러니까 복도에 애들이 자주 왔다갔다 한 상태였고, 방 주인이 한 명 자고 있기는 했지만 방에 있는 상태인데다 나머지 두 명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도둑질을 했더라는 소리입니다. 물론 짐을 편하게 나르기 위해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만.
이때가 1학년 겨울방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초대형 도난 사고는 바로 얼마 후에 발생했습니다...


3. 어느 발렌타인데이 전날 밤(2003.2.13~14)

좋아하는 선배도 있고 동급생도 있는 한창 나이에 발렌타인데이 초콜렛 정도 준비하는 것은 기본3입니다. 그 날도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초콜렛을 준비했지요. 며칠 전이 일요일이었기에 집에 가서 사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룸메이트 한 명 또한 그런 아이로, 쇼핑백 두 개 분량의 초콜렛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선배에게 줄 것이다, 하면서 엄청 기대를 하더군요.

그렇게 다음날을 기대하는 몇몇 아이들을 포함한 여학생들이 정시 소등을 마치고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 기숙사가 한바탕 뒤집어졌습니다.


당장 우리 방부터 요란했지요. 부비부비 일어났더니 룸메이트 하는 말이 "초콜렛 없어졌어!!"였으니까요. 그게 쇼핑백 단위다보니 크게 당한 셈이기도 하고요. 복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초콜렛 없어졌어"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고요.

당시 우리 기숙사의 정시 소등은 12시 반. 주변에 가로등이나 아파트 하나 제대로 없는 외딴 시골에 동떨어진 학교인데다 한 번 불을 끄면 정말 어두웠습니다. 또한 기숙사 정문은 10시가 넘으면 내부에서 문을 잠가 두었고요.
그 때 학교에 있던 여학생은 3층의 1학년과 2층의 2학년 뿐이었습니다. 3학년은 이미 예전에 떠났고요.

때문에 실제 '범행'은 소등 이후 우리들이 모두 푹 잠든 다음 모두들 일어나기 시작하는 여섯 시 전에 일어난 셈이었겠지요. 한겨울이었으니 깜깜했을 것이고.
아직 우리들이 각 방의 문을 잠그는 버릇이 없었다고 해도 깜깜한 한밤중에 3층 각 방을 돌아다니며 초콜렛을 하나하나 잘도 챙겼다는 소리입니다.


등교 이후에도 여학생들의 화제가 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잠자기 전에 각 방 문을 잠그는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기숙사에서는 제대로 초콜렛을 전달하지 못한 아이들의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끝내 범인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4. 후일담

...이상하게도 우리가 3학년이 된 이후로는 도난 사건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발렌타이데이 당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옛 룸메이트는 "짐작가는 사람이 있는데 선배들 중..."이라고 말했고,
2학년 때까지는 간헐적으로 들려온 도난 사건이 당시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한 이후 사라져 버렸습니다.

때문에 편안한(?) 3학년 생활을 보내고 수능도 치르고 졸업을 했지요.

하지만 정말 발렌타인데이 당시의 사건만은 잊을 수 없겠더군요. 기숙사 하면 다종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었으니까요.







  1. 저는 광주 사람이기 때문에 대학 다닐 때는 집에 있으면서 버스타고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전국구 학교인데다 전체 기숙사라서 3년을 기숙사 생활했습니다. [Back]
  2. 예외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여자 수가 너무 많아서 남자 기숙사 3층을 2층과 격리하여 여자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기숙사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었기 때문에 여자 기숙사 중 가장 먼 곳이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별세계였다고 하는 곳입니다. 당시 1학년 여학생 중 일부가 배치되던 방입니다. 지금은 남학생 수가 제법 늘었으니 알 수 없군요. [Back]
  3. 물론 저는 지금껏 아버지께만 드렸지만. [Back]
2010/02/10 21:08 2010/02/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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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이루스 2010/02/10 2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제 슬슬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오는 군요 (먼산)

    • 메이아이 2010/02/12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써 둔 것은 조금 예전이지만 발렌타인데이에 맞추어 올린 것입니다~

  2. ZELI 2010/02/11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렌타인 데이? 그게 뭐죠? 먹는건가요?
    [우걱우걱..]

  3. OpenID Logo 잿달 2010/02/11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발렌타인데이의 괴도...

  4. 초하(初夏) 2010/02/13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숙사의 도난 사건이로군요! ^&^

    심적으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듯 합니다.
    가족과 함께 따듯한 설 쇠시길 바랍니다~~

    • 메이아이 2010/02/14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너무나 편안하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신종족이 한 명 있는지라 미묘합니다.

  5. OpenID Logo 아인 2010/02/13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정도면 규모가 장난 아니네요;
    저의 기숙사 생활은 대1 때 1년 뿐인데
    그 때 종종 있던 도난 사건은 뭐 상대도 안되는듯;

    이런 거 보면 역시 여럿 사는 곳은 주의해야겠다 싶어요...

    • 메이아이 2010/02/14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기들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대학 기숙사의 자잘한 도난 사건은 저기에 비하면 정말 애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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