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지요.
하나는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
하나는 돌아다니며 노는 사람의 입장.

중학교 때는 준비 따위 한 것 없이 그저 돌아다니며 구경만 한 것 같던데 말이죠.
현재 제 동생은 아침에 반별 발표 다 해버리고 오후에는 둘러보며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편해 보이지만, 사실 양쪽을 다 겪은 저로서는 그저 준비한 것이 최고로 남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1학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1, 2학년의 과별 합창, 교실에 가게차리기, 1, 2학년 합동 장기자랑, 거기에 동아리.
2학년의 경우 1학년들이 차려놓은 가게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준비할 게 하나 줄어듭니다.
뭐, 과별 장기자랑을 주도하기 때문에 준비과정에서의 부담은 1학년과 엇비슷하겠군요.


<1학년, 그 솜사탕은 천장을 향해서>
(합창, 가게, 동아리)

합창부에서 메조 소프라노만큼 힘든 파트도 없더군요. 가운데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제법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축제 합창 때 두 번 다 소프라노 파트로 갔더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어 곡 두 개, 기타 곡 두 개로 불렀던 듯 합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합창의 기억만은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섞여버렸으니까요. 합창 연습이 제일 지루했고 특징이 남지 않았던 것도 원인입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2학년 프랑스어과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닐 정도의 고음 화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것, 러브 액츄얼리 후반을 그대로 복사한 게 아닐까 싶은 1학년 영어과의 크리스마스 기념 무대였습니다.

2학년이 주도하는 장기자랑도, 우리는 그저 후배된 입장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밖에 없는데, 저는 그저 사이비 교주가 '믿습니까~!!!!' 라고 외치는 자리에서 쿨쿨 조는 역할이라 연습할 것도 없었습니다.
동아리 역시 연극부였는데, 이런 것의 경우 주연은 2학년이 맡는 것이 대부분이라 우리는 그저 단역으로 후반에만 움직이는 게 전부였습니다.
정말 연극, 저와는 정말 맞지 않구나...라고 제대로 느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축제 당일은 정말 배고팠습니다.
아침 아홉시부터 음악실에 갇혀서 분장하고 기다린 것밖에 한 게 없으니까요. 분장을 일찍 해버렸기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동아리 선배가 갖다 준 귤 하나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정말 너무하죠. 얼마나 우리가 불평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자기들 시험기간에 공부할 거 다 하고, 그래놓고 극본 짤 게 없으니까 대충 인터넷에서 가져오고, 소도구 준비한 것 하나 없고, 대기실 차지해야한다고 아침 일찍 음악실에 집어넣고.

거기에 저는 우리 연극 끝나자마자 합창이 있었기 때문에 무대용 의상 따위 필요없이 바로 우리 합창용 의상 차림으로 연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달려나와서 합창 들어갈 준비 하는 애들 틈에 껴서 연속으로 노래까지 불렀습니다.
배고프고 피곤했지요.
그렇게 허망하게 오후도 지나가서 밤이 되었습니다.

2학년 교실에 차린 것1은 잡화점...이 아니라 자잘한 간식 가게를 차렸습니다. 뽑기라거나 솜사탕이라거나 말이죠. 솜사탕 기계는 우리 과 어떤 아이가 갖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뚜껑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래도 애들은 너무나 아이템이 없었던지라 그대로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교실 한켠에서 일대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벽에 하나씩 선풍기가 있고, 천장 중앙에 에어컨이 달려있는 구조였는데, 복도쪽 벽, 선풍기 밑에서 솜사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솜사탕 기계 한번이라도 보셨으면 알겠지만, 솜사탕 부스러기가 대단히 많이 날려서 그 안에 많이 묻어 있지요. 하물며 뚜껑마저 없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켄신 코스프레를 한 아이가 솜사탕 만들기 담당이었는데, 이 아이는 정말 솜사탕을 그대로 뒤집어썼고, 위의 선풍기는 10년 묵은 먼지보다도 더한 솜사탕 세례를 받았으며, 솜사탕 판매를 하던 저는 솜사탕 조달하러 갈 때마다 뒤집어썼습니다. 다행히 금방 떼어냈지만. 여기에 책장까지 전지로 가려두지 않았다면 분명 후에 선배들에게 엄청 소리를 들었겠지요.

학교 본관의 2층 복도는 그날, 우리 과의 물풍선, 삼겹살 가게였던 영어과의 리어카 이벤트, 빵을 한아름씩 든 프랑스어과와 중국어과의 호객행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2학년 독일어과 교실로 데려가기는 커녕, 솜사탕 파는 것도 겨우였지요. 그래도 잘 사주더군요.
중간에 잠시 프랑스어과 빵집에 들러서 밤에 기숙사에서 먹을 빵을 사긴 했지만, 당시 우리 입장에서는 적진영이나 다름없는 곳에 가서 물건 산다는 건 조금 꺼려졌습니다.

이 순간이 저에게는 1학년 고등학교 축제에서 가장 남았기 때문에, 그 후 체육관(겸 강당)에서 이루어진 뒷풀이는거의 기억나지도 않는군요.


<2학년, 독창적으로, 요란하게!>
(합창, 장기자랑, 동아리)

Sister Act OST 수록곡이자, 당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던 I will follow him.
이 곡이 당시 우리의 독일어 합창이었던 환희의 송가 다음에 불릴 노래로 정해졌습니다.
한순간에 합창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과는 2학년 때 주도하는 체육대회 에어로빅도 그렇지만, 대단히 개그와 흥겨움을 강조하였습니다. 프랑스어과의 특색인 우아함과 조화 따위 저 먼 세상의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당장 영화 속에서 나왔던 I will follow him은 교황과 추기경들 보는 앞에서 하는 수녀들의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파격적이었던 곡이 아닙니까. 그걸 하필 우리 과에서 합창 소재로 삼았으니 그 결과는 참 볼 만했습니다.
지휘 맡은 아이는 대단히 요란한 동작으로 지휘를 하였고 말이죠.

진짜 영화에서 하는 것 마냥 소프라노 파트에서 가장 고음이 자연스레 나오는 아이를 독창 시키고, 우리는 뒤에서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습니다. 얼굴 네모난 물리 선생님 말씀이 이 때까지는 우리 과에 점수를 푸짐하게 주었는데, 이 후 네모의 꿈을 불러서 열받은 바람에 합창 점수를 무지 깎았다고 합니다.


사실 2학년 합창은 공연 결과보다 그 준비과정이 대단히 심난했습니다.
체육대회 에어로빅도 이보다는 덜했지요. 에어로빅은 아예 학교에서 시간을 배정해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축제는 그냥 한꺼번에 '축제 준비시간'이라고만 주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겹쳤습니다. 때문에 매일 밤 텅 빈 교실과 여자 기숙사에서는 불평이 터져나왔습니다. 당장 기가 센 1학년들은 자기들 연습한다고 과별 장기자랑 연습에 자주 빠지지요, 동아리 때문에 한두 명씩 나가다 보면 어느 새 교실에는 절반도 남아있지 않지요. 그러니 연습이 어디 제대로 되겠습니까. 장기자랑 연습을 위해 1학년 시간을 맞춰주다 보니 2학년들이 합창 연습을 희생하는 꼴이었습니다. 제법 건방진 1학년들이었지요.
합창 지휘를 담당한 아이는 결국 마지막에 목이 쉬고, 또 그렇게나 합창과 장기자랑에 열성적이었던 한 아이는 아침에 수업 듣다 탈진해서 양호실로 가는 등 전도다난한 준비기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합창 연습을 마지막에 맞추고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장기자랑에서 문제가 터지더군요. 우리 과 장기자랑의 주제는 TV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회 역을 맡은 아이들 둘이 채널을 돌리다가 나오는 상황. 홈쇼핑, 드라마, 뉴스 등이었는데 이걸 전부 짧게짧게 구성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20분 넘게 나오더군요.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공연 당시에는 군데군데 애드립도 들어가서 담임이 꽤나 웃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축제를 며칠 앞두고 학생회장이 말하길, 과별 장기자랑 시간이 짧아졌다는군요.
그래도 결국 크게 고치지 못했는데 정작 공연 당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어과였나? 우리 앞차례에 무대에 올라간 과의 공연에서 방송사고가 생겨버렸으니까요.
전대물이었는데, 후레쉬맨 오프닝 영상을 먼저 틀어두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방송실 문제로 결국 시간이 지체되었고, 다른 과도 우리 과 마냥 내용이 길었기 때문에 당시 일정이 완전히 뒤로 밀려버렸습니다.

이 방송사고 하나 때문에, 동아리 연극에서 단역을 맡은 제가 직접 방송실로 가서 음악을 틀었습니다. 사실 방송실 애들이 못미더웠지요. 아무리 우리 과 애가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동아리 연극의 경우, 선배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우리들은 아예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각색해서 직접 극본을 만들었습니다. 부원이 적었기 때문에 부원 수를 감안해서 극본 짜고, 삿갓 같은 소도구도 직접 준비하고, 축제 이틀 전에 기숙사 휴게실에 모여 배경도 직접 그렸습니다. 공연의 질을 위해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이 모자란 제가 스스로 단역인 웨이트리스를 자원했습니다2. 거기에 음향 담당이 저와 어떤 1학년이었는데, 제법 괜찮아보이는 음악도 찾는 등 작년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듯 엄청 공을 들였습니다. 당시 중국어과였던 연극부 부장은 자기네 과 장기자랑보다도 이것에 더욱 공을 들였지요.

당시 학생회장은 우리 과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장이 다목적실 시간 배정 때문에 그 아이와 싸우다가 울어버리더군요. 학생회장이 우리 과, 방송부도 우리 과. 그렇지만 연극부에서 독일어과는 저 한 사람. 거기에 부장도 아닙니다. 그 때문에 빽없는 슬픈 연극부는 빠듯한 연습 시간 때문에 다른 부서 연습할 때 미리 가서 대기하고 그 부 연습 끝나자마자 무대에 올라, 실수가 있어도 그 자리에서 지적하지 않는 등 시간을 최대한으로 쓰느라 고생했습니다.

1학년 말에 두 명 정도가 유령부원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1학년 다섯 명, 2학년 세 명의 소규모 부서였던 연극부였습니다. 작년보다도 소규모였고 연습할 때 장애도 많았지만, 우리는 1인 다역을 맡기도 하고, 유령부원을 억지로 끌고 와서 참여하게 하고, 부원 전원이 배우이자 잡일 담당이 되어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2학년 축제 때 가장 기억나는 게 바로 이 동아리 연극이군요.


축제 당일에는 1학년 때처럼 대기실에 하루 종일 갇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체육관에 달려가서 마지막 연습을 해 보고 다들 흩어졌습니다. 어차피 과별 공연은 오전에, 동아리 공연은 오후로, 대단히 효율적으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오후에 만나서 분장해도 괜찮았으니까요.


밤에는 드디어 우리가 1학년들의 가게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학년 때 우리가 직접 가게를 준비하면서, 2학년들 좋겠다~~ 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가 그 2학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1학년 때의 2학년 선배들도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피곤하기 그지없는 밤이었습니다. 정말 후배들이 떼로 몰려들어요. '선배 우리 과로요~' '우리한테 오세요~' 라는 식으로 들러붙는 바람에 한 가게 한 가게 느긋하게 돌아봐야지~라는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하루짜리 학교 축제라도 이게 축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3학년을 보낸 지금, 이 축제야말로 제가 학창시절에 겪는 축제다운 축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우리 학교는 지난 목요일에 2박 3일의 축제가 끝났습니다.


일반대 축제는 가보지 않아서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애들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마치 출연 연예인이나 보러 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 그리 맘에 들지 않네요. 우리 학교 축제는 그야말로 고등학교 축제의 확장판이라고들 합니다. 윤리과부터 컴퓨터과까지 과마다 특별 부스 하나 차려놓고, 과별 장기자랑이 벌어지고, 동아리 공연하고, 스타나 서든같은 게임 대전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밤에는, 올해는 사회과가 주막을 열었기 때문에 그 옆에서 동아리나 밴드 공연을 보는 정도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게 2박 3일에 걸쳐 늘어진 것이기 때문에 밀도 있게 진행되는 느낌이 적어서 별로 재미없습니다. 저는 동아리가 없기 때문에 준비하는 재미도 없고요. 내년에는 시험준비 때문에 더욱 즐길 수 없어보이니, 축제라는 것의 즐거움은 나중에 초등학교 교사로 나가서 기획하는 입장으로 즐기게 되겠군요.
그래도 고등학교 축제라도 즐거웠던 게 저로서는 다행입니다. 아무리 학예회 같은 축제라고 해도 말이죠.


오랜만에 학교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운 교복이 있고, 그리운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공립학교인데도 다시 재발령나신 것인지 독일어 선생님 두 분은 그대로 계시네요. 극악의 시험문제를 내신 화학 선생님이나 2학년 영어 평균을 40점대로 내버려서 재시험을 보게 만든 영어 선생님이나, 이번에도 3학년 중국어과 담임이신 국어선생님이나... 지금 학교에 찾아가도 알아보실 분들이 계시는 건 좋지만, 사실 찾아가는게 두렵습니다.
학교의 추억이 미화된 것만 같아서 말이죠.
  1. 우리 학교 구조상 1학년 영어과와 독일어과는 교실이 3층에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만 2층 2학년 교실에 차려놓았지요. 1학년 때는 몰랐는데, 2학년 때 우리 후배들이 교실에 차려둔 것을 보니 그저 심난하더군요... [Back]
  2. 1학년 때 제가 연극부에 들어갈 당시에는 연극 자체가 C/A 활동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C/A 연극부를 지원한 학생들은 전부 동아리 연극부의 부원으로 인정이 되어버렸지요. 동아리 오디션 같은 것 없이. 2학년 때는 C/A 분류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정식으로 오디션을 거쳐 괜찮은 아이들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Back]
2008/10/19 10:53 2008/10/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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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키하 2008/10/19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프라노라는 부분만 들어도 떨려옵니다..
    아무리 여성과 남성의 톤 차이가 난다고해도, 저..저거!

  2. 라브에 2008/10/20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간만에 긴 글이네요^^;
    축제 참 재밌게 보내셨네요. 저도 외고 시절엔 축제가 제법 즐거웠던 것 같은데 일반고 가고 나서는 축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 말이죠;; 대학교 축제는 뭐 저희 학교 특성상(?) 거진 술판이고...
    포스팅하신 거 보니 저도 축제에 열심히 좀 참여해 볼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이렇게 추억거리도 되고 좋잖아요~

    • 메이아이 2008/10/21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저는 고등학교 때 별 것 다 참여해서 지금 이야깃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다음에는 기숙사 생활과 관련해서 한 번 써볼까요~

  3. ∑Maverick 2008/10/20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 학년별로 축제의 추억인가요... 전 그다지 좋은 추억은 없었던 듯...
    2년 내내 봉사부였던 데다가 항상 학생회를 도와 축제 실행위원 비슷한 STAFF를 했거든요... 뭐 봉사시간 줬으니 됐지만 - ㅅ-;; 덕분에 그닥 축제를 즐기지는 못했죠.
    그나저나 메이아이님은 디자인 올림픽 안가시나요??

    • 메이아이 2008/10/21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봉사부란 것도 있나요? 이름이 어째 잡일 담당일 듯합니다..

    • ∑Maverick 2008/10/21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메이아이님 // 동아리입니다 동아리 ㅋㅋㅋ.
      C.A 시간에 여기저기 봉사하러 다니는...
      뭐.. 평소에도 여기저기 다니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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