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오랜만의 추리소설, 그리고...
추리소설이란 아주 예전에 사 두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앞의 두 권 정도밖에 본 기억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실컷 봤던 뤼팽 시리즈도 추리물이라면 추리물에 넣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아,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봤군요. 아마 열차 여행 소개하던 여행책에서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듯 추리소설을 잘 보지 않습니다. 싫은 장르는 아니지만 그렇게 흥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서요. 어쩌다 이름을 듣거나 할 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책 두 권도 동기는 모 추리만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어제 한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사 놓고 반 년 간 꽂아둔 채 잊고 있었는데, 엊그제 괭이갈매기 ep3 클리어한 후에 생각나서 찾았습니다.
저 책을 산 것도 순전히 동방과 괭이갈매기의 영향입니다.
플랑드르 스칼렛의 테마곡 제목, 그리고 스펠명, 비탄 '그리고 아무도 없게 되는가?'
괭이갈매기의 스토리인, 고립된 섬에 있는 18명의 몰살. 그 때문에 ep1 출시 즈음해서 이 소설 제목이 여러 번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플랑드르의 경우에는 패러디라고는 하는데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저 마리사 스토리에서의 '혼자가 되면 목을 매달 거지?' 등의 발언을 제외하면.)
이렇듯 읽게 된 동기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정작 읽고 나니 정말 재밌군요.
동생한테 혼났습니다. 밤에 케이크 먹자고 했는데 책 읽느라 '조금 있다가~~~' 하다가 한 시간을 넘겨버렸더군요.
처음 열 명은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니었는데, 인형이 하나씩 하나씩,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줄어가니 어느 새인가 남은 사람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는 정도. 그저 집단 히스테리가 따로 없더군요. 마지막 하루는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 보는 저도 초조해질 정도였습니다. 괭이갈매기야 10월 5일 하루 사이에 전부 죽어버렸지만 이것은 3~4일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시간이 가고 사람이 줄어들 수록 밤을 새우는 게 얼마나 긴장되었을까요.
(에필로그 이후를 보면 그게 범인의 목적이었던 듯 합니다만)
더욱이 중후반부터는 저택에 불도 안 들어와서 그야말로 암흑천지. 상상만 해도 오싹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입니다. 정당방위로 인한 우발적인 살인 정도같은 게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해명이 되지 않아보입니다. 설령 공감이 갈 만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본인이 죽어서 죄를 덮어버린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되고요.
그런 점에서 코난 2기 극장판 후반에서 범인을 살려내면서 '죽을 생각 말고 살아서 스스로 속죄하라'고 하던 모리 코고로의 대사는 참 인상적입니다.
거기에 알고는 있지만, 정말 유럽의 동요는 오싹하군요. 인디언 소년 동화 빼고도 으시시한 동요 몇 개도 들은 적이 있는데, 몇 개는 자장가로 쓰였다는 것이 더 충격입니다.
P.S. ep1 이래 이 대사만은 잊을 수 없군요.

[적당히 하라고!! 뭐가 즐거워, 뭐가 축하할 일이야!1 이 섬에는 18명이 있었어! 14명이 죽었어! 남은 건 우리들 4명뿐이야! 난 절대로 죽지 않아! 밤이 샐 때까지, 아니,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또 선착장에 괭이갈매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거야!!
살아남을거야, 살아남을거야 절대로!]
-괭이갈매기 울 적에 episode 1, 10월 5일 23시 59분.
아,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봤군요. 아마 열차 여행 소개하던 여행책에서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듯 추리소설을 잘 보지 않습니다. 싫은 장르는 아니지만 그렇게 흥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서요. 어쩌다 이름을 듣거나 할 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책 두 권도 동기는 모 추리만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어제 한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사 놓고 반 년 간 꽂아둔 채 잊고 있었는데, 엊그제 괭이갈매기 ep3 클리어한 후에 생각나서 찾았습니다.
저 책을 산 것도 순전히 동방과 괭이갈매기의 영향입니다.
플랑드르 스칼렛의 테마곡 제목, 그리고 스펠명, 비탄 '그리고 아무도 없게 되는가?'
괭이갈매기의 스토리인, 고립된 섬에 있는 18명의 몰살. 그 때문에 ep1 출시 즈음해서 이 소설 제목이 여러 번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플랑드르의 경우에는 패러디라고는 하는데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저 마리사 스토리에서의 '혼자가 되면 목을 매달 거지?' 등의 발언을 제외하면.)
이렇듯 읽게 된 동기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정작 읽고 나니 정말 재밌군요.
동생한테 혼났습니다. 밤에 케이크 먹자고 했는데 책 읽느라 '조금 있다가~~~' 하다가 한 시간을 넘겨버렸더군요.
처음 열 명은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니었는데, 인형이 하나씩 하나씩,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줄어가니 어느 새인가 남은 사람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는 정도. 그저 집단 히스테리가 따로 없더군요. 마지막 하루는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 보는 저도 초조해질 정도였습니다. 괭이갈매기야 10월 5일 하루 사이에 전부 죽어버렸지만 이것은 3~4일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시간이 가고 사람이 줄어들 수록 밤을 새우는 게 얼마나 긴장되었을까요.
(에필로그 이후를 보면 그게 범인의 목적이었던 듯 합니다만)
더욱이 중후반부터는 저택에 불도 안 들어와서 그야말로 암흑천지. 상상만 해도 오싹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입니다. 정당방위로 인한 우발적인 살인 정도같은 게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해명이 되지 않아보입니다. 설령 공감이 갈 만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본인이 죽어서 죄를 덮어버린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되고요.
그런 점에서 코난 2기 극장판 후반에서 범인을 살려내면서 '죽을 생각 말고 살아서 스스로 속죄하라'고 하던 모리 코고로의 대사는 참 인상적입니다.
거기에 알고는 있지만, 정말 유럽의 동요는 오싹하군요. 인디언 소년 동화 빼고도 으시시한 동요 몇 개도 들은 적이 있는데, 몇 개는 자장가로 쓰였다는 것이 더 충격입니다.
P.S. ep1 이래 이 대사만은 잊을 수 없군요.

[적당히 하라고!! 뭐가 즐거워, 뭐가 축하할 일이야!1 이 섬에는 18명이 있었어! 14명이 죽었어! 남은 건 우리들 4명뿐이야! 난 절대로 죽지 않아! 밤이 샐 때까지, 아니,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또 선착장에 괭이갈매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거야!!
살아남을거야, 살아남을거야 절대로!]
-괭이갈매기 울 적에 episode 1, 10월 5일 23시 59분.
- 이 당시 남아있던 것은 노망난 당주의 네 손자손녀들 뿐. 보통 어른팀 아동팀 하인팀으로 나누자면 아이들만 살아남은 상태입니다. 거기에 눈앞에서 어른팀 최후의 인물인 나츠히가 사망한 상태. 그런데도 마리아가 축하할 일이라고 생긋생긋 웃고 있는 이유는 이것으로 마녀 베아트리체의 의식이 끝나서 황금향에 들어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ep1 전체에서 누가 죽어도 담담하게 있지요. 이후에 보면 네 명 전원 행방불명 처리가 됩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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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는 애거서의 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작입니다. ^^;
그건 그렇고, 전 개인적으로 *** 편입니다. 왜냐면, 저 같은 키보드워리어보다야 훨신 낫잖아요? (...)
...라는 건 반쯤 농담이고요, ***가 없었다면 살인자들은 속죄하지 않았을 것 같고, 그들의 죄값을 물을 사람 또한 없으니 ***의 판단에 공감합니다. 그의 사정도 있고요.
복수는 허무할 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살인자의 목숨만큼 피해자의 (잃은) 목숨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혹시나 해서 밝혀두지만 전 사형제도는 반대합니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못 믿겠어요.
우웅... 저는 그 노부인도 괜찮더군요. 너무 지나쳤을 따름이라고 생각되는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