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 우승을 탈환하라!

Posted by 메이아이 on 2007/12/21 17:44
Filed under 추억

*이 이야기는 논픽션, 사실입니다. 실재하는 인물, 기관, 단체명과는 100% 일치합니다.


<신입생의 의무 : 연승을 이어가라!>

우리 과(독일어과)는 대대로 남학생이 많았습니다.
졸업 직전, 남학생이 우리는 6명인데 비해 다른 과는 3~4명 정도였지요. 때문에 3년 간 축구 승리는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11명을 돌리고도 남을 정도로 사람이 충분하니까요.

그리고, 체육대회만 되면 1~3학년 전체에 지상명령이 떨어집니다.
다른 과도 목표하는 것이지만, 특히 우리 과에게는 목표가 아니라 의무인 이 것은,

'체육대회 종합우승'


우리가 입학하기 전 해까지 3년 연속으로 우승을 했더라는 겁니다. 때문에 신입생이던 우리에게는 3년의 기록을 이어갈 의무가 있었고, 연속우승에 취해있던 선배들이 강력하게 밀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체육대회는 당시 3학년에서 약 2년 위의 선배들까지 구경오는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체육대회에는 단지 운동뿐만이 아닌 1~2학년만의 에어로빅이 같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에어로빅은 따로 시상하고, 에어로빅 우승은 프랑스어과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충 할 수는 없고, 가급적 상을 받는다면 두 개 같이 받는 것이 좋으니, 에어로빅 연습 때는 각 과의 눈치작전도 전쟁 레벨이거니와 과 내의 분위기도 매우 살벌합니다. 축제를 저리가라 할 정도로 무서워요.



<1학년 : 악몽의 10점차>

1학년 때는 그 전까지의 습관이 남아 있고, 아직 규제가 심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새벽 5시에 나가서 연습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었지요.
(정작 새벽에 불러놓고는 2학년들이 잊고 잠든 것이 또 문제였지만)

하지만 그래봐야 1학년. 에어로빅은 2학년이 주도하고 체육종목은 3학년이 주도하기 때문에 그저 따라가는 것이 전부인 1학년이었습니다.

체육대회 당일 응원할 때는 '남자들은 응원없이 못산다'면서, 남자경기와 여자경기가 겹쳤을 때 두세명 놔두고 전부 남자경기로 몰려갔지요. 여자경기에서는 그래도 잘 이겨주더군요. 정말로.

그리고 결과는 2위.
점수 단위가 10점인데, 그 10점차로 프랑스어과에 패했던 것입니다. 연승을 바란 선배들은 울기까지 할 정도였지요.
점수가 큰 줄다리기에서 패한 것은 역시 타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2위란 아무 상도 받을 수 없는 불쌍한 위치입니다.
아까운 점수차로 패한 것도 모자라서 응원상을 포함한 다른 모든 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지요.



<2학년 : 약물복용!?>

*교장의 명령으로 2학년 때부터 체육대회와 축제의 연습기간이 1주일로 단축되었습니다.

2학년 당시 우리 과는 1~3학년 모두 몰아서 최고로 난감한 과였습니다. 당시 선배들과 후배들도 인정했지만,
쉽게 말해, 1~3학년 모두 잘 놀았습니다.
(우리 과를 기준으로 위로 2년, 아래로 2년 선후배들은 얌전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달리 말해 기가 드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에어로빅 연습 당시에 1학년 남학생들이 2학년들에게 엄청나게 혼난 적도 있었고요.
덧붙이자면 에어로빅과 연극 등에서 우아함보다 개그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체육종목 연습은 3학년이 주도하므로 우리는 에어로빅에 매달렸습니다. 일괄적으로 번호로 나누어 조를 만들고, 곡을 선정해서 동작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 남학생들만은 전부 한팀으로 몰아서 인트로와 엔딩을 맡게 했습니다.

연습할 때 음악을 틀어주고 녹음 테이프를 만드는 것은 제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위치에서 애들의 동작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또 재밌더군요.
그리고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한번에 알 수 있고요.

동작을 너무 화려하게 해 와서 자기만 따라할 정도로 복잡한 것을 꾸민 아이들도 있었고, 나름대로 심플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에어로빅 동작만들기는 어려워요.

앞에서 볼 때 가장 황당하고 재밌었던 것은 발레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의 곡을 중간에 넣어서 발레동작으로 형태를 바꾸라는 것인데, 이게 참 재밌더군요.
남학생들의 작품인 인트로와 엔딩도 비범했습니다만, 정확한 동작은 지금 기억나지 않네요. 체육대회 에어로빅의 비디오나 오랜만에 돌려볼까나~


각 과별 눈치작전은 특히 복장 부분에서 두드러졌는데, 다른 과와 색이 겹칠 경우 비상경보가 내려지며, 직접 가서 담판을 짓는 경우도 있고, 얼른 선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건 옷을 담당했던 애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처럼 보이더군요.
거기에 옷값은 우리가 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또 비싸면 곤란한 것이었고요.


이번에는 아깝게 지는 일은 없겠지, 하고 기대를 했는데,
체육대회 본선 당일, 정말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만년꼴찌 중국어과라고 해도 한두종목에서 선전하는 경우가 있는만큼, 종목별로 과별 우열은 사실 매우 가리기 힘듭니다. 풍부한 머릿수로 미는 축구를 예외로 하면 말이죠.
그런데 이 해에는,

영어과가 싹쓸이했습니다.

정말 체육대회 당일은 물론, 그 후 며칠간 약먹은거 아니냐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부분의 1위를 쓸어갔습니다. 작년과는 달리 '아깝다 허망하다' 정도가 아니라 그저 황당하더군요.
거기에 우리 과는 계주 때 바톤까지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과는 또 2위. 당연히 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 같은 과 동기인 중국어과 출신 친구 하는 말,

'꼴찌는 대신에 응원상 같은 것 다 받지'


...좋겠다...



<3학년 : 고3이라는 것을 잊자!>

그렇게 우리 윗 선배들은 1번의 종합우승 전적을(선배들 1학년때) 가지고 졸업을 하시고, 우리는 이번에 종합우승을 탈환하지 못하면 아예 겪지도 못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1학기 중반에 있는 체육대회 시즌은 점점 다가오고, 2학년 말부터 조용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변해버립니다. 본격적인 연습 시즌에 들어가자 실장 입에서 '고3을 잊자'라는 멘트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는지는 그쪽 담당 아이들이 잘 알 일이니 바로 체육대회 당일로 넘어간다면,


저에게 있어 이 날은 계산만 하다가 보낸 날입니다.

생각보다 우승 여부가 불안해지자 3학년 학생들은 계속 점수판 앞에서 계산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 과에는 달리기에 타고난 아이가 있어서, 남자 계주 종목은 당연히 1위로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은 것은 여자농구와 여자계주, 남자계주였고, 여자농구와 여자계주를 4위로 치고 계산했더니 우승 여부가 확실해졌습니다.

그만큼 그 아이의 달리기 실력을 믿어준 것이지요. 또한 그 전 해에 바톤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연습할 때 엄청나게 바톤 전해주는 것을 연습시켰더라고 하니 걱정없었고요.


그리고 마지막 경기인 남자계주.
우리 과가 2위로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심판은 1위로 들어온 프랑스어과 아이가 아닌 우리과 아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구령대에 막혀서 몰랐지만, 2위로 들어오던 프랑스어과 아이가 잡아당겼다고 하더군요. 엄연한 반칙이지요.


그때 기뻤던 것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뛰어나가고 환호하고 샴페인 대신 사이다 터뜨리고.
후에 룸메이트들이 '너무 요란하게 축하하더라'고 할 정도로 서로 좋아했습니다.
특히 그때 1년 전 선배이자 사실상 그 날의 응원단장이던 오라버니 한 분, 얼마나 목터져라 외치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선배의 입장에서 보는 후배의 에어로빅은 참 귀여웠더군요.


그 다음해에는 서울에서 재수하느라 못 갔고, 그 다음해, 즉 작년에는 시험기간과 겹쳐서 못 갔는데, 갔던 사람들 말이 전부 우승이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우리가 졸업한 해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남자가 두 배 이상 많은 괴현상도 보여줬으니, 질 리는 없었겠지만 말이죠.



*물론 그날 밤 기숙사의 일부 방에서 프랑스어과 아이와 독일어과 아이들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한 것은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축하를 받았다고요.
2007/12/21 17:44 2007/12/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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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르곤  2007/12/21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학교 체육대회라 함은...하루 자는날이 따로없는데... 'ㅁ';;

    정말 재밌어보여요 !!
  2. 아키하  2007/12/21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육대회...체육대회...
    ....남자들끼리 해서 안기뻐요 lllOTL
    재밌어보이네요...흙ㅎ륵
  3. ∑Maverick  2007/12/22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잠깐!
    위에 얘기 설마 고등학교 얘기?
    아무리 들어도 대학교 얘긴줄 알았는데,,,!!
    고등학교에서 체육대회도 하나봐요!~!?
    • 메이아이  2007/12/22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하는곳이 꽤 많다는데, 우리는 소풍 체육대회 축제 다 챙겼답니다.
      특히 1학기의 축제인 체육대회는 없앴다가는 학생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테니 말입니다.
  4. 『에르』  2007/12/22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학교(공학) 2학년 체육대회 때 저희반이 1등을 땄던 추억이 내심 떠오릅니다:D
    고등학교 체육대회는 뭐, 애들끼리 다른 데 놀러갔으니까(..)

    덧. ..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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