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추억을 떠올리라면 3년만의 종합우승 탈환을 포함하여 이것저것 많지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역시 아주아주 재밌었던 추석연휴 해프닝이겠군요.
<고등학교 배경>
아이는 농촌을 좋아합니다.
쓰르라미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농촌을 좋아하니까 그게 마음에 든 정도지요.
물론 이 동네 역시 변두리 중의 변두리,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한적한 장성군의 농촌 풍경이 바로 보이는 곳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5분 거리로 나가면 바로 보여요. 화려한 휴가 세트장이 있는, 과학기술원 뒤는 정말 시원시원하지요.
그래도 도시는 도시입니다. 교통은 불편해도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시설이 갖추어진, 광주 광역시의 한 구역입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농촌 한복판에 던져진 곳입니다. 광주 전남 사람이 아니면 인지도 제로인 지방의 외고지요. 남녀공학1, 전원 기숙사제. 근처에 있는 것은 아파트 한 단지 외에는 전부 논밭, 아니면 배밭과 공동묘지 뿐입니다.
뭔가 하러 나가려면 20분은 족히 걸어야지 터미널도 식당도 서점도 팬시점도 노래방도 나옵니다. 그 근처가 밤에는 꽤 위험한 곳이라는 소문 때문에 늘 밤에 불이 켜진 곳은 학교 뿐이었지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불편한데 시골에서 살겠냐'고 해도, 인간, 적응하는 법입니다.)
지금은 걸어서 5분 거리인 책방도 귀찮다고 안 가지만, 그 때는 그 정도 거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습니다. 아이들하고도 같이, 아니면 혼자서.
언제 방 아이들과 저녁 먹고 돌아왔을 때의 하늘은 참 예뻤지요.
처음 입학했을 때 하늘에 별이 한가득인 것을 보고 정말 감탄하면서 하늘만 쳐다봤지요.
장마 끝나고 운동장 너머 논이 완전히 물바다가 된 것 보고 놀랐지요.
동산 위에 누워서 넓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느꼈지요.
시설은 멀었지만, 가는 길들이 조용해서 불만이 없었지요.
그래도 밤에는 벽돌담과 교문이 꽤 믿음직스럽게 보였지요.
<추석연휴 -2일째-토요일>
2004년 추석 연휴는 9월 말, 월~수였습니다. 우리 학교는 토요일은 3교시만 하는데, 그 주 토요일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전체귀가일이었습니다. 물론 1~2학년에만 해당되었지요.
(그 외의 토요일에도 귀가하는 학생을 위해 3교시까지만 했습니다)
3학년들은 어차피 연휴때 쉬니까 연휴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가버리라고 잡아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순간부터 3학년들의 탈선은 예고되었지요.
1. 토요일의 자습실 감독은 담임들이 아니다.
2. 토요일~일요일에는 사감이 집에 가 있다.
3. 연휴를 2일 앞둔 토요일이었다.
4. 당시 우리 학년 학생들은 대체로 '놀 때는 논다' 주의였다.
(두 달 후가 수능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5. 놀기에는 밤이 제격이다.
토요일의 기숙사는 늘 조용합니다. 낮잠자는 학생, 방에서 그저 시간보내는 학생, 이미 밖으로 떠나버린 학생 등등, 오히려 밤보다 낮에 기숙사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거나 나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 소동은 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습 시작하는 7시 직전, 아이는 친구와 함께 자습실 컴퓨터에서 노래방 목록을 쫙~ 뽑았습니다. 둘다 일음파라서 좋아하는 것들 적어두지 않으면 가서 시간낭비하니까요.
거기에 감독은 정말정말 아주아주 느슨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느슨하다기보다 출석만 체크하고 학교를 떠나는 분들이었지요.
10분 뒤, 우리는 교장실을 살짝살짝 신경쓰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서 실컷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
끝나자 9시를 조금 넘었더군요. 그러니 아예 10시까지 버티자는 생각으로 만화방에 갔습니다. 아아~ 성전을 전부 본 것은 이때였군요. 그 후로는 이런 희귀한 책 찾기 힘들어서 못 봤지요.
돌아올 때는 한적한 시골의 밤을 만끽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아직 10시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래도 나는 잘못했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고3이라면 그래도 공부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가방을 가지러 자습실에 갔을 때, 정작 자습실에는 아무도 없고 휴게실에 애들이 몰려있는데다 테이블 위에 깔린 것이 만화책인 것을 보고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애들은 이미 기숙사로 떠나버린 상태였죠.
기숙사에 돌아갔더니 아니나다를까, 야식파티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엄격한 사감이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이미 우리들 머릿속에는 '2일 후 연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추석연휴 -1일째-일요일>
같은 휴일이면, 내일과 오늘의 차이는 없다.
이게 일요일 당시의 아이들 생각이었나봅니다.
아침부터 부모님 전화까지 동원하면서 '집에 간다'는 아이들이 속출하자, 결국 영어과 담임께서 엄청나게 화를 내셨군요. 아이는 그 때 휴게실에서 한참 그림그리던 터라 그 소리를 제대로 들었습니다.
거기에 그 날 아침에는 여학생들의 출석률이 낮았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2층 자습실-여학생 기숙사 통로를 통해 기숙사에 돌입!
아~ 놀라며 쫓아오는 애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애들 말을 들어보니 목욕탕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소리치고, 각 방문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기억 안 나지만 큰 문제는 될 정도가 아니었나봅니다.
그래도 여학생 기숙사에 청소시간의 교장도 아닌, 멀쩡한 아침에 남자선생님이 들어닥치는 것은 역시... 충격입니다.
토요일만큼의 타락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제가 점령하고 있던 휴게실은 어느새 상당수 애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임시 소파부대(휴게실 의자는 소파입니다)가 만들어질 정도였고, 자습실 컴퓨터 네 대는 각 과마다 한 명씩 점령해서 테트리스 대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내일이 집에 가는 날인데 어쩌겠습니까.
<추석연휴 1일째-월요일>
공식적으로는 '점심까지 공부하고 점심때 귀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 지킵니까?
물론 아이는 그 말 그대로 믿고 일찍 책을 들고 휴게실로 갔습니다만, 어째 자습실은 텅 비었고, 선생님들도 이미 포기상태였나봅니다.
아우아우~ 나는 부모님께 점심때 오시라고 했는데에에~!!!
die Erinnerung. 독일어 여성명사로 '추억'이란 뜻입니다.
우리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그래놓고 캐릭터들 이름은 일본식으로 지은 기묘한 습작의 3학년 부제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인상적인 일들은 잊지 않아요.
오히려 보석이 갈면 예뻐지듯, 계속 생각해내면서 더욱 미화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앨범은 한페이지 한페이지 늘어나면서, 심심할때 꺼내보며 웃을 수 있나봅니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역시 아주아주 재밌었던 추석연휴 해프닝이겠군요.
<고등학교 배경>
아이는 농촌을 좋아합니다.
쓰르라미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농촌을 좋아하니까 그게 마음에 든 정도지요.
물론 이 동네 역시 변두리 중의 변두리,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한적한 장성군의 농촌 풍경이 바로 보이는 곳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5분 거리로 나가면 바로 보여요. 화려한 휴가 세트장이 있는, 과학기술원 뒤는 정말 시원시원하지요.
그래도 도시는 도시입니다. 교통은 불편해도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시설이 갖추어진, 광주 광역시의 한 구역입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농촌 한복판에 던져진 곳입니다. 광주 전남 사람이 아니면 인지도 제로인 지방의 외고지요. 남녀공학1, 전원 기숙사제. 근처에 있는 것은 아파트 한 단지 외에는 전부 논밭, 아니면 배밭과 공동묘지 뿐입니다.
뭔가 하러 나가려면 20분은 족히 걸어야지 터미널도 식당도 서점도 팬시점도 노래방도 나옵니다. 그 근처가 밤에는 꽤 위험한 곳이라는 소문 때문에 늘 밤에 불이 켜진 곳은 학교 뿐이었지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불편한데 시골에서 살겠냐'고 해도, 인간, 적응하는 법입니다.)
지금은 걸어서 5분 거리인 책방도 귀찮다고 안 가지만, 그 때는 그 정도 거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습니다. 아이들하고도 같이, 아니면 혼자서.
언제 방 아이들과 저녁 먹고 돌아왔을 때의 하늘은 참 예뻤지요.
처음 입학했을 때 하늘에 별이 한가득인 것을 보고 정말 감탄하면서 하늘만 쳐다봤지요.
장마 끝나고 운동장 너머 논이 완전히 물바다가 된 것 보고 놀랐지요.
동산 위에 누워서 넓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느꼈지요.
시설은 멀었지만, 가는 길들이 조용해서 불만이 없었지요.
그래도 밤에는 벽돌담과 교문이 꽤 믿음직스럽게 보였지요.
<추석연휴 -2일째-토요일>
2004년 추석 연휴는 9월 말, 월~수였습니다. 우리 학교는 토요일은 3교시만 하는데, 그 주 토요일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전체귀가일이었습니다. 물론 1~2학년에만 해당되었지요.
(그 외의 토요일에도 귀가하는 학생을 위해 3교시까지만 했습니다)
3학년들은 어차피 연휴때 쉬니까 연휴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가버리라고 잡아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순간부터 3학년들의 탈선은 예고되었지요.
1. 토요일의 자습실 감독은 담임들이 아니다.
2. 토요일~일요일에는 사감이 집에 가 있다.
3. 연휴를 2일 앞둔 토요일이었다.
4. 당시 우리 학년 학생들은 대체로 '놀 때는 논다' 주의였다.
(두 달 후가 수능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5. 놀기에는 밤이 제격이다.
토요일의 기숙사는 늘 조용합니다. 낮잠자는 학생, 방에서 그저 시간보내는 학생, 이미 밖으로 떠나버린 학생 등등, 오히려 밤보다 낮에 기숙사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거나 나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 소동은 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습 시작하는 7시 직전, 아이는 친구와 함께 자습실 컴퓨터에서 노래방 목록을 쫙~ 뽑았습니다. 둘다 일음파라서 좋아하는 것들 적어두지 않으면 가서 시간낭비하니까요.
거기에 감독은 정말정말 아주아주 느슨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느슨하다기보다 출석만 체크하고 학교를 떠나는 분들이었지요.
10분 뒤, 우리는 교장실을 살짝살짝 신경쓰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서 실컷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
끝나자 9시를 조금 넘었더군요. 그러니 아예 10시까지 버티자는 생각으로 만화방에 갔습니다. 아아~ 성전을 전부 본 것은 이때였군요. 그 후로는 이런 희귀한 책 찾기 힘들어서 못 봤지요.
돌아올 때는 한적한 시골의 밤을 만끽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아직 10시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래도 나는 잘못했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고3이라면 그래도 공부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가방을 가지러 자습실에 갔을 때, 정작 자습실에는 아무도 없고 휴게실에 애들이 몰려있는데다 테이블 위에 깔린 것이 만화책인 것을 보고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애들은 이미 기숙사로 떠나버린 상태였죠.
기숙사에 돌아갔더니 아니나다를까, 야식파티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엄격한 사감이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이미 우리들 머릿속에는 '2일 후 연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추석연휴 -1일째-일요일>
같은 휴일이면, 내일과 오늘의 차이는 없다.
이게 일요일 당시의 아이들 생각이었나봅니다.
아침부터 부모님 전화까지 동원하면서 '집에 간다'는 아이들이 속출하자, 결국 영어과 담임께서 엄청나게 화를 내셨군요. 아이는 그 때 휴게실에서 한참 그림그리던 터라 그 소리를 제대로 들었습니다.
거기에 그 날 아침에는 여학생들의 출석률이 낮았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2층 자습실-여학생 기숙사 통로를 통해 기숙사에 돌입!
아~ 놀라며 쫓아오는 애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애들 말을 들어보니 목욕탕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소리치고, 각 방문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기억 안 나지만 큰 문제는 될 정도가 아니었나봅니다.
그래도 여학생 기숙사에 청소시간의 교장도 아닌, 멀쩡한 아침에 남자선생님이 들어닥치는 것은 역시... 충격입니다.
토요일만큼의 타락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제가 점령하고 있던 휴게실은 어느새 상당수 애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임시 소파부대(휴게실 의자는 소파입니다)가 만들어질 정도였고, 자습실 컴퓨터 네 대는 각 과마다 한 명씩 점령해서 테트리스 대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내일이 집에 가는 날인데 어쩌겠습니까.
<추석연휴 1일째-월요일>
공식적으로는 '점심까지 공부하고 점심때 귀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 지킵니까?
물론 아이는 그 말 그대로 믿고 일찍 책을 들고 휴게실로 갔습니다만, 어째 자습실은 텅 비었고, 선생님들도 이미 포기상태였나봅니다.
아우아우~ 나는 부모님께 점심때 오시라고 했는데에에~!!!
die Erinnerung. 독일어 여성명사로 '추억'이란 뜻입니다.
우리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그래놓고 캐릭터들 이름은 일본식으로 지은 기묘한 습작의 3학년 부제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인상적인 일들은 잊지 않아요.
오히려 보석이 갈면 예뻐지듯, 계속 생각해내면서 더욱 미화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앨범은 한페이지 한페이지 늘어나면서, 심심할때 꺼내보며 웃을 수 있나봅니다.
-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여고+남학생 들러리라고도 봐도 될 정도로 여학생 천국이었습니다. 가장 숫자가 많은 우리 과도 남학생이 고작 7명이었으니까요. 성차별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아직까지도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워낙 그 때 7명의 건장한 남고생들이 솔선해서 이것저것 해줬으니까요. 아아~ 습관은 무서워~ [Back]



왠지 저보다 재미있는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신 것 같군요..
부럽습니다 -_ㅠ
학교보다 기숙사가 재밌었죠
ㅎㅎ; 역시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은 이런 재미있는(?) 해프닝들이 일어나나 보네요. 저도 마찬가지로 여러 재미있는(?) 경험을 했지만요 ㅎㅎ.
그런데 글만 읽어보니 이건,,, 거의 뭐 폭주상황이군요 ㄷㄷ.
제가 3년 겪은 이래 이만한 일은 체육대회 외에는 없었지요. 아~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기숙사 생활이라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 보이네요'-'
그쪽은 별이 아직도 별이 잘 보이는지요..?
저는 아직 별다운 별을 보지못한 불쌍한 중생이랍니다ㅠ
저희쪽이 공업단지라서 그런지 공기도 별로고, 시야도 탁하고(..)
아마도 잘 보일거에요. 아마도.
댓글달려고 하다가 오픈아이디에 앗!
오픈아이디 지원하시는 군요 ^^
역시 고3때가 고등학교 중에는 이런저런 추억이 가장 많지요
하지만 전 고1 때가 가장 폭주 쿨럭...
남녀 구성은
저같은 경우 저희반에 여자가 8명이었는데
(이과여서 여자가 없었어요)
과에 남자 7명이라니 놀라울 정도입니다;
플러그인만 하나 눌러주면 되는거니까요.
우리는 어째서인지 나이 많아질 수록 폭주정도가 높아졌지요.